[오희엽 국어] 시적 화자의 유형(10)
안락한 권태가 얼마나 무서운 독인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새로운 숲길에 들어서며
느껴지는 숨 가쁜 설렘이
두려움도 배고픔도 잊게 만든다.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시적 화자라고 한다. 시적 화자는 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창조한 허구적 인물로 무조건 시인과 완전히 똑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적 화자는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시적 화자가 시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또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시인과 동일한 시적 화자
자신의 내면세계를 밖으로 표현하는 시의 장르적 특성상 서정시에서 시인을 시적 화자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윤동주, <참회록>
2. 시인과 동일하지 않은 시적 화자
시적 효과를 위해 시적 화자와 시인을 분리하기도 한다. 화자가 시인의 나이나 성별은 물론 살고 있는 시대까지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지리산이 제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나는 도련님 속에 흐르는 강입니다.
섬진강이 깊어진 제 가슴에
지리산을 담아 거울처럼 비춰 주듯
도련님은 내 안에 서 있는 산입니다.
-복효근, <춘향의 노래>
3. 표면에 드러나는 시적 화자
작품 속에 ‘나’ 또는 ‘우리’ 등의 1인칭 대명사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4.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시적 화자
작품 속에 1인칭 화자인 ‘나’나 ‘우리’가 작품 표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경우이다.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중략>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김종길, <고고(孤高)>
5. 관찰자 시점의 화자
관찰자 시점의 시적 화자는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화자가 소설의 1인칭 관찰자처럼 작품 속에서 다른 인물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방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치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백석, <여승>
② 화자가 뒤로 숨은 채 대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로만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윤사월>
★ 선지의 속살
➊ 시적 화자를 시의 표면에 직접 내세워 시인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2006년도 6월 모평)
➋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화자가 대상을 관찰하고 있다. (2006년도 수능)
➌ D와 E는 표면에 드러난 화자가 대상을 관찰하여 묘사한다. (2010년도 6월 모평)
1. 1인칭 화자인 ‘나’나 ‘우리’가 등장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2. 대상을 관찰하는 경우라도 화자가 작품 표면에 드러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3. 화자가 대상을 관찰한 다음 묘사했느냐, 아니면 단순히 서술했느냐의 차이도 분명히 구별해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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