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맨 [444924] · MS 2017 · 쪽지

2014-07-23 19: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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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 시작편 -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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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 밤새워 가면서 술 마시러 다니느냐, 놀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재수생, 아니 이제 삼수생은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엄마는 그야말로 나를 군입대시키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 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시피 생각이 들길래, 삼수생은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구겨진 지폐 몇 장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삼수생은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삼수생은 그래도 독서실로 찾아갔다. 너덜해진 기출문제집과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재수의 패배를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공부를 하고 싶었다.

수능! 좋다. 그러나 독서실에 한 걸음 들여 놓았을 때 삼수생은 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삼수생은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 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삼수생은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시간 후에 삼수생이 관악산 정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삼수생은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자라 온 스물 한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삼수생은 또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 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삼수생은 거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서울대생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울대생들은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어린 학생들은 PC방과 노래방에 자리잡았다. 재수생들은 연잠 고잠을 중고나라에서 구매해 대학생 흉내를 낸다. 삼수생은 이 재수생들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삼수생은 또 오탁의 독서실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삼수생은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독서실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삼수생은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까 했던 생각이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군입대.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엄마가 군입대신청서를 써 놨을까? 삼수생은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엄마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삼수생이 날밤을 새면서 놀기만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삼수생과 엄마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삼수생이나 엄마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 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엄마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대학생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독수리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연대생과 고대생과 서울대생이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삼수생은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삼수생의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삼수생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나는 간다 관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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