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한 재수이야기
2012학년도 수능
국어 - 3등급
수학 가 - 4등급
영어 - 3등급
물리1 - 3등급
화학1 - 7등급
지학1 - 3등급
고등학생 때 과장 좀 보태면 교과서에 손끝 한번 안 댈 정도로 공부에 손을 놓았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수업 땐 퍼자고 주말엔 게임하고 그랬는데, 결국은 어떻게 안 되더군요. 지금까지 부모님한테 성적표를 감춘 것도 처참한 수능 성적표로 들통이 나서 너무 죄송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아주대 컴퓨터공학과 수시 및 가톨릭대 컴퓨터공학과 정시 원서를 찔러보긴 했는데 당연하게도 대기번호도 못 받고 떨어졌습니다. 결국 재수를 하게 됐는데요,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저는 딱히 명문 상위권 학벌에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수능 때 평소보다 못 봐서 재도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학과로 진학해서 ~가 되고 싶다! 라는 꿈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고등학교 3년을 엉망진창으로 아무의미 없이 보내면서 내게 커다란 기대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주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배반했다는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잡혀 오로지 그 끔찍한 감정만을 재수생활 내내 뜯고 씹고 맛보면서 공부하는 추진력으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운 과정이었지요. 뭐 중간중간에 딴 짓을 하기도 했고, 워낙에 기본이 없었기에 성적도 잘 안 오르고 하는 등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지만, 결과는 어떻게 잘 됐네요.
2013학년도 수능
국어 - 3등급
수학 가 - 2등급
영어 - 1등급
물리1 - 3등급
지학1 - 1등급
지학2 - 1등급
수능을 평소실력보다 잘 보는 바람에 보통 상향지원을 하는 수시 지원 대학들의 논술시험에 아예 안 가는 행복한 원서 돈낭비(...)를 하는 특이하면서도 행복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시에서 연세대 지질학과, 서강대 기계공학과, 시립대 컴퓨터공학과를 썼는데 앞에 껀 예비 한자리수 받고 떨어졌지만 나머지에는 합격해서 지금은 서강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비록 군인이지만 불과 몇년 전에 겪었던 대학입시 경험이 제 인생에 워낙 큰 영향을 준터라 아직 정돈이 안 된 생각과 추억들을 담아 이렇게 모자란 글을 씁니다. 재수를 최고로 잘 해냈다, SKY 같은 명문대에 붙었다, 누구보다도 점수를 많이 올렸다... 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경험이 되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해서 좀 더 길게, 아니 아주 길고 자세하게 써보고자 합니다. 이제 여름도 다 지나갔고 9월 모평이 코앞인데, 수험생 여러분, 특히 재수생 여러분들께 아낌없는 격려를 드립니다. 파이팅.
p.s. 예전에 http://orbi.kr/0003601083 이런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오르비란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았고 지금도 거의 그렇지만 정시 기간에 입시정보가 궁해서 기웃거리던 이 곳에 해당 취중진담(...)을 멋지게 써제끼는 바람에 제게 있어서 갑자기 남다른 의미를 가진 곳이 되었네요. 이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참 많지만, 역시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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