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1을 버리게 된 과정
2022년, S 모 고등학교(자사고, 안 가는 걸 추천)에 다니고 있던 김옯붕(18)은 내신에서 물리, 화학, 지구과학을 골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물1 전교 13등, 화1 전교 1등, 지1 4등급(...)
김옯붕은 수능 선택과목을 고르는 시즌이 되자, 고민할 것도 없이 생지 따위 갖다 버리고 상남자답게 물1화1을 택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2022년 11월, 집앞 학원에서 수능 미리 쳐보기 이벤트가 있었다. 정시파이터를 꿈꾸던 옯붕은 곧바로 지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러 갔다.
2023학년도 수능. 되돌아보면 그것은 김옯붕에게 참 잘 맞는 시험이었다.
딱 한 과목만 빼면.
1교시 국어. 96점(언매 35, 39 틀): 시험 끝나고 나만 17번 1번 했어서 매우 당황
2교시 수학: 92점(미적 22, 30 틀): 기깔나게 22빼고 다풀고 이거 설마 96점임? 하다가 30번 극'댓'값 조건 못보고 86적고 개같이 멸망
3교시 영어: 95점
4교시 물1: 50점
물1 19번까지 다풀고 13분이 남자, 김옯붕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아.. 고2때 이정도로 시험을 잘 보다니.. 이러다 실제 수능에선 뉴스에 나는 거 아냐?'와 같이 본인을 초천재미소녀병약아인슈타인으로 착각하며 20번을 풀고 시험을 마쳤다.
마지막 화1. 어지간한 모의고사에서는 50점이 나왔던 터라,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데.. 문제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7번 동적평형, 9번 몰농도 문제부터 상당히 쩔쩔맸고, 11번, 12번에서는 n l ml ms와 제3~제5 이온화에너지라는 괴랄하기 그지없는 자료들을 풀며 어찌저찌 열심히 넘겼다. 아니 근데 왜 11~14는 개같이 어려운데 15, 16은 쉽지? 배치 왜 이따구로함? 하는 의문을 품은 채 4페이지로 넘어갔다. 4페이지에 넘어갔을 때 남은 시간은 단 5분. 제일 만만해 보이는 18번을 초스피드로 푼 뒤 그 다음으로 쉬워 보이던 20번을 붙잡고 있다가 시간이 끝난다. 나머지는 다 찍었다.
채점 결과는 놀라웠다. 37점. 17 19 20 다 틀리고, 앞에서 11 15도 나갔다. 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3등급이었다. 하필 2컷이 38점에서 끊겼던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는 뭐라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인터넷에 올라온 20번 문제를 다시 풀어 보았다. a,b,c=2,3,4인 걸 그냥 찍는 것 외에는 어떠한 논리적인 풀이법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그렇게나 못 본 '딱 한 과목'은 참으로 딱한 과목이었구나. 아니, 이건 그냥 하면 안 되는 과목이었구나. 이런 과목을 고른 내 잘못이었구나..
시간은 흘러 고3이 된 김옯붕(19). 오늘은 5월 학력평가(당시 교육청 해킹사건으로 연기됨)를 치는 날이었다. 5월 학력평가부터는 과탐 2과목이 출제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망할 놈의 화1 대신 장난삼아 내신 시간에 취미로 공부했던 지2를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원점수 50점, 표준점수 100점이 성적표에 찍히고 난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화학의 ㅎ자도 꺼내지 않았다.
전국의 모든 화1 응시생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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