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아나키스트 [683306] · MS 2016 · 쪽지

2016-08-27 1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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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장에서의 모든 방법론은 결국 여러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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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된 문법 혹은 쓰기 교재를 공부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대체로 저는 영어에 별로 걱정이 없는 편이었어요. 실적은 옆 일반고보다 못해도 외고를 나오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항상 월등하진 않지만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씩 영어 공부를 더 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첫 수능에서는 20분 정도 남기고 영어에선 100을 받았죠. (이때 수능이 쉽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이땐 이비에스도 풀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재수를 하게 되면서 생겼어요. 그 전까지 영어는 한 문제 틀리거나 다 맞거나 할 정도로 효자 과목이었는데 갑자기 널뛰기를 하기 시작한 거에요.
원인은 바로 선생님과 저 사이의 괴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 말 그대로 그냥 읽고 적절한 답을 썼어요. 수능 문제를 푸는 데에 있어서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한다 생각지도 않았죠. 이런 비유가 좀 웃기지만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문제를 푸는 느낌과 비슷하게 풀었습니다.
반면에 선생님은 달랐던 거에요. 그 반에 학생이 저 밖에 없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를 상대적으로 못하는 학생들도 일종의 문제 풀이 도구들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 거죠.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 선생님께서는 워낙 자의식이 강한 분이셔서 평소에도 저랑 좀 안 맞았었어요.
거기서 그쳤으면 됐지만 제 형체 없는 풀이를 부정하셨고 본인의 풀이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셨었죠.
다행히도 그 해(13년) 수능은 백분위 98%를 맞긴 했지만, 그 전 해의 수능처럼 여유롭게 풀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아주 촉박했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그때 수학과 탐구를 아주 못해서, 결국 삼수를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외고 버프가 끝발을 보였어요.
고등학교 시절엔 영어가 전공이라서 많은 날에는 하루 총 9교시 중 7교시를 영어가 독차지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시수가 많았습니다.
또한, 저희 학교는 고3 때부터 수능 대비에 들어가고 그 전까지 알아두면 좋을만한 배경 지식이 담긴 원문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정도네요.
원체 영어를 공부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고 그 내용도 수능을 훨씬 웃도는 텍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력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런 수업을 듣지 않게 된 그 당시엔 영어 등급이 2등급에 머물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는 영어 인강도 많이 듣고 재수 학원 선생님께서 제시해주신 방법론들도 두루 섭렵했습니다.
이전의 제가 두루뭉실하게 하던 것을 명료하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가져오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반면, Grammar in use로 문법을 공부하고 영어로 된 작문(문장을 쓰는 책 따로 문단과 글을 쓰는 책 따로) 교재를 공부했습니다.
수능에서 직접적으로 문법 용어를 묻지 않으니 익숙한대로 문법을 공부하자는 생각이었고 글을 잘 읽기 위해선 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런 지식들을 종합해서 제 방법을 만들었고 역시나 저는 그 해 수능도 영어에서 1등급을 받았죠. 비록 첫 해 수능처럼 100점을 받진 못했지만, 두번째 수능처럼 불안한 감 없이 엄청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풀었습니다. 솔직히 풀 때는 100점을 예상할 정도였으니까요.

첫 해에는 방법론이 없는 게 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저에겐 그게 익숙한 것, 즉 제일 잘하는 것이었으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해가 시사하는 바가 컸는데, 사실 제 방법이나 그 선생님의 방법이나 틀린 건 없었다고 봐요. 재수학원 선생님들의 연소득이 아주 높은 걸로 아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전 그 선생님의 방법을 제 것으로 만들지도 못했고, 반면에 기존의 제 방법을 고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수능을 봤으니 당연히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세번째 수능에선 이런 저런 것을 종합하여 저만의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9월 평가원에서는 95%도 아닌 낮은 2등급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수능장에서 맘 편히 문제를 풀 수 있게 해준 건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제가 이 방법에 확신이 있으니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이 말이 본인만의 방법을 만들라는 건 아닙니다. 본인이 만들든, 본인이 듣는 강사의 방법을 이용하든간에 선택을 했다면 다른 길로 현혹되지 말고 그걸 밀어붙여서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 과정에서 이 방법이 왜 옳은지, 혹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결함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문제 풀이와 함께 분석 및 정리를 해주면 금상첨화겠죠. 실제로 저는 삼수하는 해 수능 전날, 1장 분량으로 각 영역 별로 제 방법이나 제 약점들을 요약해서 그것들과 작년 수능 기출만을 가져갔습니다. 제 방법을 워밍 업하기 위해서요.

저처럼 별다른 성과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온 분들이라면 수능은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큰 흐름을 결정 짓는 최초의 사건일 겁니다. 그런 중요한 첫 경험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법을 잠시 빌려오는 게 아니라, 그걸 멋지게 소화한 주체로서 마무리 짓는 편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수능이 우리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수능을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로 매듭 짓는다면 장차 여러분이 더 큰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그 첫 발걸음을 더 당차게 딛을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이 여러분을 바꿔놓는 게 아니라, 그 시스템에서 여러분을 직접 만들어가는 나날들로서 남은 수험 생활을 준비하시길 바라며 나도 진짜 공부하러 가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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