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10편 - 신뢰성
우리 수험생들도 샤프라던지 노트라던지 이것저것 잔고장이 발생하는 물건이 많습니다. 컴퓨터용 싸인펜에서 갑자기 잉크가 흘러나온다면 아주아주 짜증나겠죠?
마찬가지로 군인들이 쓰는 병기, 무기, 화기들도 고장이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능을 치르는 중에 발생하는 고장과 사고처럼, 전쟁이나 전투 중에서 발생하는 고장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탄이 걸려서 적군과 교전 중에 총이 작동을 멈추면 그냥 죽는 겁니다.
심지어 무기들은 아주 위험한 물건입니다. 각종 화약과 폭발성 물질을 다량으로 쓰기 때문에, 탄이 걸려서 작동을 안하는 수준의 사고와 고장에서부터 아예 자기 혼자 폭발해버리고 아군을 휩쓸어버리는 대형사고가 터질 때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훈련 중 K-9 자주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습니다.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터졌다는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쓸 물건이 단순히 관리 못해서 터진거라고 하면 어느 병기가 전쟁에서 쓰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병기의 '신뢰성'은 병기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절대로 군인들이 쓰지 않겠죠.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군인들의 목숨을 맡길만한 물건인데 혼자 폭발사고로 터져나가면 누가 의지하려고 하겠습니까.
병기의 신뢰성은 대단히 중요해서, 정말 적절하지 못한 운용과 교리로 사고가 난 사례도 다수 존재합니다. 아군이 패배하고 도망가는 와중에서 쓸데없이 비용의 문제로 비싼 무기를 들고 도망가다가는, 상대방의 공격에 자폭이 나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들어보셨을 일본 최대의 전함 '야마토'는 비록 전투로 거의 목숨이 끊어질 상황이긴 했으나, 최후가 더 안습이었습니다. 함체가 기울어지면서 탄약들이 쏠리고 폭발에 휘말려 자기 자신의 포탄에 목숨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저기 사진에 보이는 배들이 수백미터 짜리 초거대 군함들입니다. 유폭으로 최후를 맞이한 야마토가 얼마나 요란한 최후였는지 아시겠죠? 일본해군은 보통 상대방이 때린 것보다 더 심하게 처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병기를 생산하고 설계할 때도 이 신뢰성 때문에, 되도록 '간단하고 단순한 구조'를 지향합니다. 부품이 많아지고 복잡해질 수록 고장이 날 확률도 높아지며 수리비용도 커집니다. 또한 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되도록 적은 종류의 부품으로 쉽게 구성된 물건이 가치가 높습니다.
심지어 우리 민간인들이 살게되는 집도 처음 입주하면 잔고장 잔수리를 많이 하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한 집이 됩니다. 무기 또한 마찬가지로 잔고장이 쉽게 발생하기도 하며 항상 충격과 극한의 상황에서 쓰기 때문에 내구도와 신뢰성이 강조됩니다.
(세계 2차대전 중 개발된 영국의 '스텐기관총'은 단가가 싸고 매우 쉽게 만들 수 있었으나 극단적인 설계로 인해 신뢰성이 매우 떨어지고 지멋대로 발사되어 악명이 높았습니다)
현대의 화약은 이러한 점 때문에 적절하게 정해진 신관에 의한 자극에만 반응하여 터지게 설계됩니다. 총을 쏘거나 불로 지져도 지정된 조건에 맞지 않으면 폭발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안정성과 신뢰성이 높아진 것이지요. 과거 단순한 형태의 화약을 쓸때는 적군의 공격에 유폭이 나서 아군이 몰살당하기도 하는 수난을 겪다가 결국 이 부분도 극복되었습니다.
자기 손에 쥐어진 무기가 제대로 작동도 안하고 시도때도없이 스스로 터져서 내 손모가지를 날려버리면 누가 그 무기를 쓸까요. 아마 군인 대부분은 그런 무기는 다 전투 초반에 버려버리고 도망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병기 공학자들은 더 높은 신뢰성, 안전성을 가진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싸메고 설계하고 있습니다. 공학자들이 더 좋은 설계를 열심히 만들어 낼수록, 생산단가는 더 효율적으로 지출되며 안전성은 더 올라갈 것입니다.
(이런 병기의 구조는 대단히 중요해서, 현대에 살아남은 총 중에선 간단한 구조와 적은 부품 덕에 가성비가 높게 평가되는 무기들도 있습니다.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1/2018041101772.html )
무기에서도 부품이 적게 들어가고 덜 복잡한 구조를 가질수록 고장날 확률은 낮아집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쓰는 풀이도 간단하면서도 반드시 중요한 핵심만 짚은 풀이는 실수가 발생할 확률이 낮습니다. 쓸데없이 길게 나열해서 풀어쓴 풀이를 달달달 외운다면 분명 어디선가 삐끗할 것입니다.
병기에서 구조가 단순하고 부품이 적게 요구될 수록 안전성이 높아지듯, 여러분의 풀이와 생각의 구조도 단순명료하고 효율적일 수록 잔실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쓸때도 말을 엄청 길게 하면 어디선가 오타가 발생할 확률이 있겠지만, 짧게 이야기 하면 그만큼 실수할 확률도 줄어들겠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분이 더 효율적이고 짧게 목적지로 도달하는, 부품과 과정이 덜 들어가는 좋은 풀이를 개발해야 합니다. 평소 공부할 때는 항상 쓸데없이 길고 실수가 발생하는 방법으로 풀었다면 분명 시험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다가 실수가 나서 점수를 깍아먹을 것입니다.
병기에서 고장이 나고 폭발 사고가 발생할 여지를 줄여야 하듯이, 여러분도 풀이의 시간을 줄이고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답을 도출할 수 있는 안전성과 신뢰성이 높은 풀이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https://orbi.kr/00019535671 - 1편
https://orbi.kr/00019535752 - 2편
https://orbi.kr/00019535790 - 3편
https://orbi.kr/00019535821 - 4편
https://orbi.kr/00019535848 - 5편
https://orbi.kr/00022556800 - 번외편 인치와 법치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숭실대 합격생을 위한 노크선배 꿀팁 [숭실대 25][수강신청꿀팁] 0
대학커뮤니티 노크에서 선발한 숭실대 선배가 오르비에 있는 예비 숭실대생, 숭실대...
-
낼부터 추합시작 0
제발 담주 월요일까지 붙게 해주십시오......
-
마플 기출 돌리고 있는 중인데 이거 다 풀고 바로 4규 시즌1 단계로 넘어갈까...
-
반수보다는 재수 7
삼수보다는 삼반수 사수보다는 사반수 오수보다는 자살
-
학종이든 교과든 보니까 경쟁률 높고 충원도 다른 과에 비해 덜 도는거 보니까...
-
프사 변경 2
고2때 국어 교과선데 합리적 의심이 들어 이걸로 했습니다
-
2학기에 휴학하고 반수하면 휴학했다고 학점이 깎이거나? 그러진 않나요..? 로스쿨...
-
공무원이나 교사들 반응은 어땠나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자기들 밥그릇 달려있으니까...
-
실모 시즌까지 검더텅 무한 반복?
-
사랑이 담겨있는 한 개만 주세요
-
담임이 아침부터 나를 교무실로 부른다 담임T:우리 OO이 탐구 하나만...
-
~~~~~~~ 1
워!
-
오늘 6시에 재밌길 기대해본다 부남들 정모또 가나ㅋㅋ
-
현재 국어 모고 공부 안했고 고1 모고 치면 국어 낮은 4, 높은 5가 뜹니다 이젠...
-
배치표 0
이대랑 외대랑 배치표상 점수 같은 과가 왜 진학사에 넣으면 칸수가 다르게 나오나요?
-
딱풀핑—> 얘가 goat임 엄지손가락만한애가 딱풀들고 500원짜리… 1000원짜리…...
-
의사단체에서 24학번을 왜 버림 뭐 같이 싸운 의리 이런 얘기라기보다는 선배들이...
-
굿즈배포 ㄹㅈㄷ 6
어쩌다보니 당첨자 두분이서 비대면 굿즈 수령장소가 같아짐 둘이 가져가다가 마주치면...
-
ㅈㄱㄴ
-
대학원생 아저씨입니다. 재작년 쯤부터 입시철마다 물리학과/자연대/공대 진학 관련...
-
이런 조합은 진짜 드물거 같긴한데 쌍지에서 덜고인 세지랑 쌍사에서 덜고인 동사끼리...
-
여긴 어차피 떠날텐데 그냥 공부 1도 안한 상태인 게 기분이 이상함
-
부남이들 다 어디간거노 ㅃㄹㅃㄹ 정모좀하자 어디갔냐 다들
-
프레임 화2 기출문제집 풀어보신 분들 시중에 화학2 기출문제집이 이거랑 김준기출이랑...
-
3개년 성적 인증 15
시험을 항상 잘친다는건 매우 어렵다. 역시 시험은 컨디션과 운이 많이...
-
유튜브 진학티비가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서울 /연세 /고려 /서강 /성균관 /한양...
-
2023년 1월>3월>2월>4월~10월 비슷>11월>12월
-
쿨쿨 3
-
애 둘 낳으면 육아휴직만 하다가 군복무기간 끝남 애 둘낳으면 군필 이상 애국자 맞긴함
-
죄송한데 이성적이면 인하대 자유전공융합학부나, 공합융합학부 가능할까요? 진학사 금일...
-
얼리버드 기상 2
-
저는 현재 한의대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제 자그마한 경험을 써볼까 해요. 사람은...
-
다음번에 오면 시켜봐야지
-
스나 성공하게 해달라고 매일 절에 가서 108배 하려고요 ㅋㅋ
-
어휘력이 부족해서 말로 설명은 못하겠는데 상당히 훌륭한 영화인거 같아요.
-
개인적으로 여의사는 공보의3년 복무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1
그렇게 사명감 사명감 거리시는데 막상 실제로 처참한 지방의료에 의사로서 기여할수...
-
정답이 3번 이라네요
-
어디 가야 할까요? 집은 수도권입니다. 증원 전이면 to 좋고 수도권에서 가까운...
-
분명 4대 미드인데 작년에 월즈 못감 올해도 팀을 보아하니 월즈는 못갈것같은 선수...
-
섹보자임 2
?
-
이번 수능에서 화작 70 미적 66 영어 4 생윤 50 사문 59 뜬 현역입니다....
-
후기좀 알려주세요
-
07이고요 노베입니다. 핑계지만 개인 사정때문에 지난 1년간 공부를 하지...
-
고3 담임쌤한테 연락 와서 정시 지균 받을 수 있으면 받으라는데 아마 학교에서 현역...
-
25수능 15 20 21 22 28 29 30 틀려서 3등급 받았습니다 ( 미적선택...
-
애니가 아니라 버튜버입니당 ㅇㅇ 애니랑 버튜버 구분도 못하는 허접뇨속들이 진짜 ㅡㅡ
-
나한테만 이래 ㅅㅂ
항상 재밌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