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4Answer [592707] · MS 2015 · 쪽지

2021-07-19 04:37:03
조회수 7,574

(새벽갬성)4수생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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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새 없는 실습 일정에 지쳐 몇달만에 들어가본 페이스북. 이제는 대숲 보는 용도로밖에는 쓰지 않던 어플에 무슨 이유로 들어가 봤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수술 참관 대기 중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빨리 수술 시작해서 집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마지막 유흥거리나마 찾고 싶던 것이겠지. 


내 수많은 대치동에서의 추억을 함께 했던 오니기리와이규동이 긴 역사를 뒤로 하고 폐업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 첫번째로 눈에 들어왔다. 


하 순간 내 가슴팍에 근조 화환이라도 하나 붙여야 하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단순한 규동집이라기엔, 그곳에서 먹던 트리플 치즈 규동은 내 20대 초반을 함께했기에. 


2015년, 다른 친구들은 군대 가서 뺑이를 치고 있을 22살, 나는 4수를 결정했다. 결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수해서 붙었다가 서울대를 위해 삼수하겠다고 포기해야만 했던 고대. 그리고 삼수 뒤 떨어진 성적과, 원서질의 실패로 급간이 확 낮아져 버린 대학. 무려 2년 장학금이나 받고 들어간 대학이었으나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오티때 이상한 학교뽕 주입하는 필수 교양 목록을 보고 학을 떼며 난 여기 도저히 못 있겠다 속으로 선언하고, 선배에게 흡연구역 위치를 물었다. 담배를 한 자리에서 세까치나 피우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그 자리에서 당찬, 아니 납득할 수 없었던 입시에 대한 복수를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집에는 대학교를 다닌다 속이고, 방랑을 하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당시 집에서는 나에게 더 투자할 돈 없고 희망이 보이는 동생에게 투자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상황이었고, 나는 비용을 벌어야만 했다. 과외를 구했다. 서울바닥에서 이 학력으로 과외 구하기란 참으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과외시장같이 남자 선생이 적당한 실력으로는 불리한 이 바닥에서, 과외를 하나라도 잡기 위해 아쉬운 소리들을 해야 했다. 그나마 용돈 받는 대가로 동생 가르치는건 좀 나았지, 다른 학부모들은 내 소속 대학을 보며 바로 컷 하기 일쑤였고, 수능 성적표와 고대 합격증을 들고 다니며 구차하지만 내 사정을 설명해 겨우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얼마 안가 그만두게 되었지만.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도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걍 솔직하게 얘기하면 될걸. 그땐 무슨 같잖은 똥가오로 그랬던건지. 

이 시기 남의 돈 벌어먹는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크게 체감했던 것 같다. 


여자친구도 삼수를 결정하고 독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데이트 할 시간도 거의 나지 않았다. 돈도 없었고. 그래서 과외가 없는 날은 집에다가는 학교 간다고 뻥카 쳐놓고 가장 싼 취미에 몰두했었다. 카공족의 시초라고나 할까. 지하철을 타고 하염없이 종점까지 내달렸다. 소요산도 가보고, 천안도 가보고, 인천도 가보고, 일산도 가보았다. 그리고 네이버로 흡연구역 있는 카페를 검색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공부도 공부지만, 그땐 힐링이 정말 절실했기에. 책 한권 펼쳐들고 40분 정도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분노가 차올라 그대로 담배를 들고 흡연구역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연기를 통해 한숨을 바라보며, 흡연구역 통유리 너머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공간 이질적인 느낌. 저들과 나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왜 이리 찌들어 있는 것인가. 저 커플은 왜 이리 행복해 보이는가. 나는 왜 이러고 사는가. 


그렇게 공부아닌 공부를 끝마치고,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면 딱 맞을'시간에 맞춰 다시 지하철을 타며, 공부를 쉬고 저녁먹으러 나온 삼수생 여친에게 카톡으로 꼬장을 부리던 나의 추하고도 병신같았던 그 스물둘의 시간은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나의 공식적으로 있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학생활이 탄로나고 만 것이다. 단 한달 반만에 출석 에프로 장학금 짤과 학고를 확정 받았으니 집에서 모르는게 신기하겠지. 그땐 에타라는 어플의 존재도 몰랐고, 학고 받으면 집에 우편물 가는지도 몰랐다. 알았으면 진작에 씨부레 주소부터 친구 집으로 옮겨 놨겠지. 아니다. 그때는 모두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시기였고, 맡길 친구들은 다 군대 가있었으니 뭐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너 무슨 생각이냐"

거실에서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다. 생전 집 안에서는 절대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던 양반이 말이다. 

"뭐 어차피 2학기 휴학도 안되는 학교. 자퇴하면 장학금 뱉어내랍니다. 걍 제적당할게요. 안돌아갑니다."

그 당시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무서워했던 내가, 자체 통금 열한시를 꼬박꼬박 지키던 내가, 무슨 깡으로 그렇게 부딫혔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나를 한참을 노려보셨다. 나도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 해라 그래. 내도 니가 그 학교에 오래 안남아 있을거 같았다. 니 그대로 다니라 했으면 또 편입이네 뭐네 이상한짓 하고 다닐거 아니냐."

"잘 아시네요."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렇게 나의 '4수 시켜줘'땡깡은 먹혀들어갔고 망할 뻐킹 대치동과의 인연은 다시 연장되었다. 우리 일년 더 한다! 일년 더 하게 됐다고 ㅆㅂ!!!!


그래서 이게 그놈의 오니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궁금하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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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힘든 과 실습을 시작하게 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아서 일필휘지로 갈겨버렸습니다. 본3 힘드네요. 유튜브 하랴, 논문 만드랴, 실습공부 하랴 요즘 너무 바빠서 몸이 두개여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입시판에 오래 있으면서 참 여러 인간군상들을 많이 본 것 같은데, 언젠가 제가 본 인간군상들로 캐릭터들을 만들어서 소설이라도 하나 써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스카이캐슬 중산층판 같은 버전으로요. 

아무튼 반응 좋으면 계속 써볼까 합니다. 스물둘의 저는 참 한낱 입시생 치고는 굴곡이 좀 많은 편이었네요. 뭐 그 이후의 삶이 그렇다고 평탄한 편은 아니었지만요ㅋㅋㅋ

지금도 그 당시 고시원이 있던 동네를 지나가노라면 그 시절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예전에 글 올렸던 게이사우나도 그렇고 참 인생 다이나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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